중국 자금성과 일본 오사카의 해자 여행

2017.9.14


중국 자금성엔 있고 경복궁에 없는 것은 해자다.
일본 오사카성엔 있고 한양도성에 없는 것도 해자다.
해자는 성 밖으로 못을 파 만든 방어시설이다.
깊고 넓게 팔수록 적이 쳐들어오기 힘들어진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해자는 넓이가 200m 길이는5.5km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선 공주 공산성 같이 자연하천을 이용한 해자는봤어도 인공해자를 본 적이 없다.
얼마 전 갔던 무장객사에 갔다가 해자 터를 발굴하는 것을봤는데 규모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렇듯 우리나라에 해자가 많지 않은 것은 주로 산지에성을 쌓아서일테다.
그리고 해자를 파기 위해선 엄청난 노동력이 든다.
백성을 생각하는 위정자라면 해자 파자는 말을 쉽게 할 수없었을 것이다.

일본 전국시대 장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적을 공략하기위해 성 주위를 파 물로 가득 채웠다.
물길을 막아 식수를 차단하는 것은 물론 배를 띄워 적을공격했다.
적을 반드시 무너뜨리겠다는 그의 집념이 무섭다.
하지만 히데요시 군사들에겐 엄청난 노역이 아닐 수 없다.
설사 전쟁에 이기더라도 돌아올 것 하나 없는 사람들에의해 해자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오사카성의 해자는 일시적으로
이에야스의 군대를 저지시켰지만 전세를 뒤집진 못했다.
자금성의 해자를 만들기 위해 퍼올린 흙은 높이 49m의인공산인 경산을 만들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망국의 책임을 지고 경산에
올라 목을 매 자살했는데 죽기 전 해자를 보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덧글

  • ㅇㅇ 2018/02/02 04:08 # 삭제 답글

    글쎄요. 해자를 일부로 만들지 않았다는건 백성에 대한 마음으로 이뤄졌다고 보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임란때 불에 탄 경복궁은 19세기 조선후기에 재건되었는데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경복궁 중건을 했죠. 경복궁 중건 도중 화재사고가 나서 다 태워먹고 공사를 다시 시작했죠. 경복궁 중건 때문에 비용을 충당하고자 펼친 당백전 발행은 훗날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낳게 되었고 당시 경복궁 중건 자체가 백성들의 고통입니다. 백성을 생각했다면 경복궁 중건하지 말았어야죠. 결국 왕건강화가 목적이죠. 자금성이나 오사카성 또한 권력의 상징이라는걸 보여주지요. 경복궁은 사정이 어려운 조선이 큰 마음먹고 크게 지은겁니다. 안타깝게도 훼손되어 수 없이 많은 전각들이 불에 타 없어졌지만요.
  • ㅇㅇ 2018/02/02 04:09 # 삭제 답글

    한양도성 또한 백성들의 노역이 많았습니다. 물론 '해자를 파는것보다 노역이 덜하지 않겠느냐?' 또는 '그 정도는 감당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하는이가 있겠지만 문제점은 노역이 들어간 한양도성을 행정구역 기능일뿐 성곽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기 힘들었습니다. 크기가 너무 넓어 막기가 힘드니 왜란, 호란때 조선왕은 외적을 막을 방도가 없자 아예 수도를 버리고 도망가버렸지요. 그 뿐입니까? 넓은 성벽은 시기가 지나면 무너질 수 있기에 보수공사를 계속 해줘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만큼 노역은 들어갔고 오죽했으면 조선후기때 백성들이 힘들게 노역을 했는데 정작 한양도성은 도시를 방어하는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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