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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1일
‘익는다, 불탄다, 그리고 땄다.’ 82년. 김수형 감독이 연출한 영화 "산딸기"의 카피 문구로 주연은 육체파 여배우 안소영이다. 성적 호기심이 들끓던 내 나이 열다섯. 등하교 시간마다 나는 페닉 상태에 빠져들곤 했다. “애마부인”을 필두로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 뼈와 살이 타는 밤” 과 같은 담벼락의 영화포스터들 때문이었다. 성적인 것을 암시하는 이 같은 제목의 영화 포스터엔 어김없이 반라의 여 주인공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했다. 과히 에로영화의 전성시대라 할만했다. “산딸기” 또한 에로티시즘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였다. 하루에도 열몇 번 성적 충동에 시달리던 내게 가슴이 반쯤 드러나 있는 여배우 안소영의 모습은 한마디로 죽음이었다. 어느 날엔가는 바지춤을 붙잡고 극장 앞을 서성거리기도 했지만 감히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직 나이 어린 학생이었던 것이다. 어른이 되기에는 까마득히 먼 미성년자의 비애를 아는지 모르는지 한 번은 포스터 앞에서 정신을 놓고 있던 날 가게주인이 나무랐다. 학생이 공불해야지 왜 이런 걸 보고 있느냐며. 나는 용기를 내어 ‘학생은 남자가 아닌가요?’ 라고 외쳤지만 그 것은 어디까지나 입 안에서 맴돌 뿐이었다. 영화는 열다섯 소년의 성적욕구와는 별개로 흥행에 성공했고 그로 말미암아 시리즈를 거듭해 나갔다. 한마디로 80년대 한국영화를 규정짓는 단어를 찾으라면 단연 에로였고 산딸기는 그렇게 열다섯 소년의 머리에 또렷이 각인되었다. 하지만 정작 산딸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해서였다. 숲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회색빛 도시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까닭이다. 분출할 길 없는 성적 충동에 시달리던 열 다섯 소년! 어느덧 어른이 된 소년은 차를 몰고 한 시골 마을을 지나다 차를 세운다. 차창 너머 산딸기를 발견한 것이다. 산딸기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된 딸기와 달리 까실까실하고 시기만 했지 먹잘 것 하나 없었다. 요즘 아이들은 앞에 있어도 거들 떠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전, 아니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기 이전의 시대로 올라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늘 먹을 것을 찾아 이동해야 했던 우리 먼 조상들에겐 절대적으로 필요한 먹거리였다. 출출했던 탓일까? 아님 유난히 신 것을 좋아해서일까? 그 자리에서 스무 개 이상의 산딸기를 따먹었지만 포만감은 느낄 수 없었다. 문득 영양을 따져보기조차 민망한 이런 것들로 배를 채워야 했던 조상들의 삶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어쩌면 조그만 열매를 두고 날짐승 들짐승과 처절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긴 문명의 정점에 서있는 오늘의 인간도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벌이며 살아가긴 마찬가지. 생존의 의미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지만 말이다. 끝으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산딸기” 시리즈는 5 편까지 제작 되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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