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념이 유교였던 나라 조선.
조선의 지배 계층이었던 양반들은 남녀간의 애정 행각을 터부시 하였다.
'남녀 상열지사'란 말이 생겨난 것도 이 때문이다.
남녀는 언제나 유별한 것이어야만 했고 이로인해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도 생겨났다
물론 자유 연애도 허락되지 않았다. 인륜지대사인 혼례는 오로지 부모가 짝지워진 사람과만 가능했다.
부부지간에 관계를 치룰 때에도 불을 켜서 상대의 몸을 보려하지 않았고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했다.
또한 여자가 먼저 잠자리를 먼저 하자고 할 수도 없었고 부부관계도 정상 위에 한해서였다.
여자가 먼저 잠자리를 먼저 요구할치라면 정숙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이렇듯 성이 철저히 억압된 사회였기에 여자는 외간 남자에게 자기 살을 드러내기를 극도로 꺼려하여
외출시에는 장옷으로 얼굴을 감쌌다.
일부종사라는 말이 있듯 조선의 여인네들은 오로지 한 남자를 섬기며 살았고 남편이 세상을 일찍 떠나면
평생토록 수절해야만 했다. 혹 외간 남자에게 겁탈을 당할라치면 은장도를 꺼내 자결함으로서 열녀란 이름으로
나라와 후세 사람들에게 떠받들려졌다.
그러나 조선의 양반들은 여인네들에게 이렇듯 정절을 강요하면서도 남자들에겐 그렇지 않았다.
남자들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 재혼 할 수 있었고 부인이 멀정히 살아 있음에도 얼마든지 첩을 들일 수가 있었다.
더불어 기방에 드나들며 기생들과 술을 마시고 관계를 가졌다.
이 때 양반들은 부인과 불을 끄고 관계를 맺던 것과는 달리 알몸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대낮에도 관계를
맺었고 온갖 체위를 마다하지 않았다.
자기 부인에게는 정숙을 강요하면서 자기는 온갖 체위를 즐기는 양반들의 이중 잣대였다.
겉다르고 속다른 이런 양반들의 행태는 실학 사상이 대두된 조선 후기 여러 예술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연암 박지원이 쓴 양반전과 호질같은 소설은 이 같은 양반의위선을 통렬하게 꼬집고 있으며 중인 화원들이
그린 춘화도에서는 성에 탐닉하는 양반들의 행태가 가감없이 그려진다.
한 마디로 춘화도엔 양반들의 온갖 체위가 망라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그림은 온갖 음란물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이 보기에도 무척이나 자극적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같은 작품을 통해 양반들의 위선을 낱낱이 까발리면서 억압받고 살던 여인네들의
삶에 연민을 느낀다. 더불어 남녀상열지사란 이름으로 수 많은 작품이 폐기되었음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건 양반들이 첩과 기생들을 옆에 끼고 살았던 것과 달리 종의 신분으로 태어나거나
경제력이 없었던 일부 사내들은 평생 여자 손목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한 생을 마감했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