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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7월 09일
임진왜란의 주역이었던 두 수군장수, 원균장군과 이순신장군의 무덤과 사당에 다녀왔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오산을 출발, 먼저 찾아간 곳은 충남 아산에 있는 충무공 무덤이었다. 6,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성역화 사업으로 여느 왕릉 못지않게 본 무덤은 물론, 가까이 형 희신과 아우 요신의 무덤도 잘 관리되고 있는듯 했다. 이 충무공 위패를 모신 현충사는 그곳 무덤에서 약 10 km 떨어져 있었다. 허나 규모에 비해 이 충무공의 정신을 올곧게 담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거대하기 짝이 없는 철근 콘크리트 시멘으로 세운 사당은 권위주의 시대의 상징처럼 보였고 표준 영정은 친일행적으로 논란이 분분한 장우성이 그렸다 한다. 일제시대, 만주 괴로국 장교 출신의 이 정통성 없는 대통령과 그 하수인들의 이 충무공에 대한 회칠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사당 곳곳에 박정희 각하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비문을 남겨 보는 이로 하여금 쓴웃음만 자아냈다.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오욕의 한국 현대사를 잠시 생각하며 이충무공 생가와 활터 그리고 정유재란 때 왜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셋째 아들 이 면의 무덤을 지나 유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역시 친일부역과 박정희 정권의 나팔수노릇을 하던 이은상이 번역한 이 충무공의 한시가 눈에 들어와 심기가 불편했다. 나라를 위해 목슴을 바친 장군의 사당에서 조국을 배신한 자들의 글과 그림 그리고 비문을 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유물관에 전시된 임진왜란 당시의 유물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시간을 두고 천천히 관람하기엔 부족하지 않았다. 천자총통을 비롯한 각종 화약 무기들과 임금이 내린 교지를 비롯하여 전시상황에서 하루도 빼지 않고 쓰던 난중일기와 조정에 올린 장계들... 그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전란 초기 조선군을 무력화 시켰던 일본군의 주무기인 조총이었다. 한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다수의 조총 매니아가 존재하고 실재 몇 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위력은 대단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물관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진중의 장인 태귀련을 시켜 만들게 했다는 두 자루 장검이었다. 그 길이가 보통사람이 들 수 없을 정도로 워낙 크고 그래서 실재 사용하기보다는 의전용으로 만든 검인데 장군이 직접 지은 시를 두 자루 검 날에 새기었다고 한다.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석자 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 번 휘둘러 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장군의 왜적 소멸에 대한 의지를 담은 詩이지만 정작 그 詩를 새겨 넣은 검은 조선검이 아닌 일본도였다. 장인 태귀련이 임진란이 일어나기 몇해 전 일본으로 포로로 끌려갔다가 임란 발발 후 적의 길잡이가 되어 돌아왔다 다시 우리 진영에 항복한 까닭이다. 일본도에 왜적을 섬멸하고자 하는 뜻을 새김은 분명 아이러니지만 그만큼 일본도는 조선 장수들이 탐 낼만큼 뛰어난 것이었다. 유물관을 나오자 구본관이라 하여 일제시대에 뜻있는 인사들이 성금을 모아 지은 사당이 나온다. 지금의 사당을 세우기 위해 이곳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이 사당이야말로 충무공의 뜻을 잘 받들고 있다 생각한다. 차가운 시멘콘크리트가 아닌 결이 느껴지는 나무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현충사를 뒤로하며 45번 국도와 1번 국도를 타고 평택을 지나 송탄 어느 지점에서 '원균 장균 묘'라는 팻말을 발견한다. 길을 몰라 이리저리 헤매면서 겨우 찾은 원균 장군의 무덤! 이순신의 무덤과 그 크기와 규모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생각처럼 초라하지만은 않다. 그의 사후 조정으로부터 선무 일등공신으로 추증 되었고 또 이 일대가 원주 원씨의 세거지이기도 한 까닭이다. 물론 문화재로도 등재되어 관리되고 있다. 무덤에서 멀지 않은 원균 장군의 사당은 위용을 자랑하지 않아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다만 위패를 모시고 있는 영정이 불만이었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 후손들이 왜 악의적으로 원균을 비하하며 그린 그림을 영정으로 쓰고 있는지. 살아생전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그린 초상이 아니라면 한 사람의 좋은 면을 나타내 그리는 것이 영정이지 악의적으로 해석해 그리는 게 영정은 아닐 터이다. 비록 정유년에 칠천량에서의 대패로 조선 수군이 괘멸 되다시피 했고 그래서 최고 지휘관으로서 그 책임을 지지않을 수 없으나 그는 병역의무를 피하기 위해 국적을 포기하는 몰염치한 짓을 않았고 작전상 부득이 후퇴하다 왜적의 칼에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결과가 어찌되었든 조국을 위해 힘써 일하다 죽은 자, 명예롭게 받드는 것이 후손된 입장으로 마땅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말한다.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하여 자기가 삼도 수군통제사의 자리에 올랐다고. 그러나 기록은 전하고 있다 이순신과의 갈등관계에 있었을 망정 무고하게 모함을 한 적은 없었다고 말이다. 결국 역사의 정당한 평가는 고사하고 이순신에 대한 신격화로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박정희 정권의 희생양이 되고 만 것이다. 중앙정부로부터 그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더구나 극심한 견제와 간섭 속에서 연전연승을 이어간 이 순신의 업적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순신 신화를 만들기 위해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은 한 사람의 장수를 끌어내 부관참시 해야만 할까? 하긴 정통성 없는 정권이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무슨 짓을 못할까싶기도 하다. 없는 죄도 뒤집어 씌워 산사람을 죽인 게 그 얼마인가! 이순신이 일본도에 왜적섬멸의 의지를 담아 詩를 새겨 넣었던 것이 아이러니라면 또 하나의 아이러니는 전란의 와중에서 내내 앙앙불락했던 원균의 무덤과 이순신의 무덤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반나절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귀신이 있다면 두 사람은 서로 화해했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아마 이순신 신화를 위해 영원히 악역을 맡아야 하는 원균의 심사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어서 화해는 꿈도 못꿀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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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호질을 소재로 한 번 그려볼까요?..
by 모두루 at 03:04 문득 북곽선생의 위선을 꾸짖던 호랑이.. by 解明 at 02:08 ^^ by 모두루 at 01:39 재미있는 발상이군요^^ by 레인보우 at 01/07 아....... 동지들이여 by 23 at 01/07 아...남쪽지방은 눈을 보기 힘들군요... by 모두루 at 01/06 설경이 좋습니다. 여기선 보기 힘든 .. by 레인보우 at 01/05 그렇구나 ^^ by 모두루 at 01/05 정확히는 알지못하겠지만..천국의문.. by 경택 at 01/04 원래 있는 얘기였나? 이명박 시리즈는 .. by 모두루 at 01/04 몇개는 원래 있는 얘기에 이름만 바꿔.. by 경택 at 01/04 둘 다 그림은 멋있더라 by 모두루 at 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