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차 안에서 날적이(日記)

2017.8.20

비오는 날 차 안에서 책을 봅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정확히는 일본 에도시대 이야기인데 재밌네요.


댓글알바 날적이(日記)

2017.8.20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진보를 표방하는 팟캐스트 방송 새날의 패널께서 댓글알바였어?
찌라시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방송인 송명훈씨의 입담은가히 예술이었다.
세상에 말을 이렇게 재밌게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정도로 듣고 있으면 흠뻑 빠져들었다.
살아온 이력이 만만치 않고 또 나와 같은 연령대여서 더공감하며 들었던 것 같다.
새날의 인기로 인해 다른 팟캐스트 방송에서도 러브콜이이어지는 듯 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팟캐스트가 마이너이긴 하지만
방송인으로 나름 입지를 굳혀가는 것 같아 보고 있는나로서도 흐뭇했다.
그런데 팟캐스트 방송 사씨남정기에서 밝힌 그의 고백이충격적이다.
박근혜 편에 서서 문재인을 공격하는 댓글 알바였다니...
박근혜를 찎지 않았다지만 돈을 받고 여론조작에 나선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나도 형편이 어려우면 하루 일당 5만원에 영혼을 팔 수있을까?
그토록 경멸하는 자유한국당의 불법 선거운동원이 될 수있을까?
지난 과오를 반성하는 자기 고백이지만 불법 댓글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임박한 시점이라는 게 순수성을 의심케 한다.
이런 조건에 넘어갈 사람이었다면 같은 상황이 반복
됐을 때 저 쪽으로 넘어가지 않는단 보장이 어디 있나?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정말 그렇다.

가방장사 여행

2017.8.19


광주 송정동에 사는 선배 집에 머물며 가방장사를 만났다.
나와 동갑으로 선배와는 4년 전부터 알고지내는 사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무척이나 가까워서 집안 대소사는 물론 여자와
잠자리를 할 때 어떤 기술을 사용하고 반응이 어떤지에대해서도 허물없이 말하였다.
노점상인 그는 감시 카메라를 피하기 위해 차량 번호판을비닐로 가렸다.
그가 파는 가방은 모두 짝퉁이고 값은 몇 만원을 넘지 않았다.
마침 들고 다니는 가방이 낡아 가방을 하나 사기로 했다.
3만 5천원에 파는 걸 3만원에 주겠다고 한다.
나는 지갑에서 3만원을 꺼내 건네주었다.
선배도 가방이 필요하다며 하나 팔아주었다.
그는 장사 수완이 좋아 지나가는 아줌마가 가격을 물어오면놓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사게 만들었다.
하지만 몇 개를 팔면 더 이상 팔 생각을 하지 않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는 집이 없었다.
모텔 방에서 달세 35만원을 주고 산다는데 방안엔 컴퓨터도 없고읽을만한 책도 없었다.
컴퓨터는 스마트 폰이 대신했고 책을 읽는 대신 티브이를 보며소일했다.
취미는 빠징코 비슷한 전자오락실에 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독신이었는데 엄청난 여성 편력을 자랑했다.
중학교 때 여자를 처음 사귀었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여자와잠자리를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자와 잠자리를 갖는 건 어렵지 않았단다.
한 번 성공하자 자신감이 생겨 여자에게 접근을 하면 족족다 넘어왔다고 한다.
실패도 있었지만 성공확률이 더 놓았다.
이삼십대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거생활을 반복했고 결혼을 할 뻔도
했었지만 한 여자에 정착하지 못하는 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지금은 사귀고 있는 여자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관계를 가진다고 했다.
한편으론 그의 여성 편력이 부러우면서도 정처없이 떠도는생활이 짠했다.
가정 형편이 불우했던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사였고 인품도 모나지 않은 분이었다.
어찌 어찌 살다보니 지금처럼 되었고 딱히 지금의 생활에불만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새벽 두시까지 이어진 술자리.
하룻동안 여행이나 같이 다니자고 했더니 귀찮다고 했다.
아마도 여행대신 모텔방에서 티브이를 보거나 전자오락실에서시간을 보냈으리라.
다다음날 그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세요?
“장성 필암서원입니다”
“필암서원요?”
필암서원이 어떤 곳인지 알 길이 없는 그에게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고 다음에 내려오면 또 보자는 말을 하고 끊었다.
옆머리가 하얗던데 염색하란 말을 해야 했을까?
거울을 보니 다행히 내 머리는 염색한지 얼마되지 않아 흰머리가보이지 않았다.


남원 광한루 월매네집 여행

2010.8.18
1
남원 광한루에 갔더니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월매네 집이 있다.
월매가 누구냐?
전직 기생으로 성춘향을 낳아 금지옥엽으로 키운 여자다.
성춘향이 절세미인이었던 것으로 보아 월매 또한 미모가 상당했을 것 같다.
춘향전에는 월매가 나이 사십이 넘어 한 딸을 얻었다고 한다.
바로 춘향이다.
월매 남편이 누구였는지 모른다.
춘향전에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찍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사십이 젊디 젊은 나이지만 당시 사십은 초로의 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얻었으니 월매를 보고 덤벼드는 남자가있었다는 것이다.
춘향이를 낳게 한 남자.
월매네 집을 돌아보면서 남자와 월매의 만남이 궁금했다.
혹성탈출, 스타워즈,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는 흥행에 힘입어
후속편이 제작되는 것은 물론 영화 이전의 이야기를 만들어
흥행을 이어가는데 이른바 프리퀼이다.
그렇다면 한국 최고 고전소설로 평가되는 춘향전도 프리퀼이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월매와 춘향 아버지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보는 건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일 수도 있고풀길 없는 욕정과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는 생활고 속에
이루어진 거래일 수도 있고.
이야기는 쓰기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장성 필암서원 여행

2017.8.18

2

2

3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더랬어요.
너그 할머니는 하서 대감 직계손이시라고.
궁금했지만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최근 하서 대감이 어떤 분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남에 퇴계 이황이 있다면 호남엔 하서 김인후가 있다.
성균관 문묘에 배향된 유학자가 설총,최치원,안향,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성혼, 이이를 비롯해총 열여덟분이라고 합니다.
하서 김인후는 호남사람으로는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인물이었습니다.
그를 모신 필암서원은 임금이 편액을 내린 사액서원이 되어나라의 보호를 받았구요.
당연 호남 유학자들 사이에서 하서 대감은 태산같은존재였습니다.
하늘 천 땅지 조차 모르고 일년 열두달 농사만 짓는 백성들도 한번쯤
들어보았을 이름...
어린 시절 증조할아버지 무릎아래에서 한학을 공부했던
아버지로서는 자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그리 사랑하지 않았던 듯 합니다.
너무 짱짱한 집안의 딸이라 부담스러워했던 듯 해요.
자격지심도 있었을 것 같고요.
암튼 광주 송정 사는 선배집에서 사흘간 자고 올라오는 길에장성 필암서원을 들렀습니다.
생각보다 보존상태가 좋더군요.
서원을 돌아보면서 얼마전 읽은 "조선의 아버지들"이란 책내용을떠올려 봤습니다.
하서 대감은 서릿발 같이 준엄한 유학자이기 전 딸을 너무나아끼고 사랑하는 아빠였습니다.
요샛말로 치면 딸바보지요.

나이를 먹어가니 생전 아버지가 앞뒤 문맥없이 했던 말들이문득문득 떠오릅니다.
하서대감 이야기도 그렇구요.
최근 연구조사에 따르면 우리 DNA는 부계보다 모계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저는 어머니에게 유전형질을 더 많이 물려받은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만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아버지 살과 뼈 속에 하서 대감의 유전자가 있었다면 제 살과
뼈 속에도 유전자가 남아 있을테지요.


문재인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 날적이(日記)


2017.8.17
우체국이 문을 열기 10분 전 도착했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걸 예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내 앞으로 줄을 서고 있는 사람은 고작 네 다섯...
왠지 허무했다.

80년 6월 전두환 우표를 사려고 청량리 우체국서 길게 서있었던 날부터 대통령취임기념우표를 발행하는 날이면
늘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지지여부와 상관없이 그렇게 했다.

13년 2월 박근혜 취임식 땐 조금 늦게 가는 바람에 우표가 동이 나 아쉬웠었고.
지금이라도 박근혜 우표를 사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 나는 지지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기꺼운 마음으로 우표를 샀다.

자가 작동하는 스마트 폰 날적이(日記)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핸드폰 스스로 사이트를 검색하고 전화를 걸어 전화가 걸려오게 한다.
급기야 페북에 뜻모를 외계어와 함께 아버지 산소 사진을 올리기도 하였다.
처음엔 액정창을 닫지 않아 그런가 싶었는데 그런 것도 아니다.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화면과 마찰을 일으키면 자가작동을 해 나를 곤란케 하는 거다.
아마도 수명이 다돼가나보다.
그러고 보면 화면 터치식이 아닌 버튼식 폰이 편하긴 하였다.
자가 작동하는 일도 없고 손가락 끝에 전해져오는 기분 나쁜 전자파도 없었으니 말이다.
고속도로 졸음쉼터에서 쉬고있는 지금 역시 글을 쓰다보니 손끝이 저리다.
어쨌든 아무 맥락없이 올라온 아버지 산소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제 곧 운전을 하여 집으로 가면 4박 5일간의 여행도 끝이납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끝이라 생각하니 아쉽네요.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