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숱 날적이(日記)

1

갈수록 머리숱이 줄어들고 있다.
줄어들고 있을 뿐 아니라 가늘어지고 있다.
몸이 피곤하면 머리부터 가라앉는다.
머리가 빠져 고민이라던 후배의 말이 이젠 달리들리지 않는다.
할수만 있다면 정수리에 머리를 천개 쯤 심고 싶다.
모근이 튼튼한 동료 작가의 머리를 볼 때마다부러움이 일곤한다.
그렇게 튼튼한 모근을 가졌음에도 귀찮다는 이유로머리를 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알지
못할 열패감을 느꼈다.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고향인 봉하로내려갔을 때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머리였다.
밀짚모자를 벗었을 때 드러나는 빽빽한 머리숱이지금도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반대로 그의 오랜친구였던 문재인 대통령을 보면애잔한 마음이 든다.
머리를 숙일 때 드러나는 듬성듬성한 머리가
마치 십오륙년 뒤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다.

문득 젊은날의 모발상태가 궁금해 앨범을 뒤졌다.
스무살에 친구랑 서해안에 놀러가 찍은 사진이다.
턱선도 날렵했지만 머리숱이 지금과 비교할 수없을 정도로 많다.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턱선은 한없이 둥글어졌고 몸은 둔해 일어서고
앉는 것도 경우에 따라선 결심이 필요하다.
이젠 두발딛고 박차 다리를 뻗지 못한다.
무엇보다 서러운 건 노안이다.
작은 글씨를 읽을 수가 없다.
다행인 것은 아직도 사람들 이름을 잘 기억한다는 것이다.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나쁘지도않은 것 같다.
노화는 피할 수 없지만 정신만큼은 건강했으면좋겠다.
꼰대가 되는 걸 너무 겁내하지 않고 나의 한계를인정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야겠다.


사천 泗川 콩트

사천 泗川

 

잘 살아.
서...서연아...
돌아서는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사업을 한답시고 여기저기 끌어 모은 돈을 모두 날렸다.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죽을 곳을 찾아 여기 저기 떠돌았다.

“응”

남해안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다 나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산 하나가 마치 나를품어줄 것 같만 같았다.

삐리리~~~

모르는 번호다.
틀림없이 빚쟁이일텐데.
한참을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예?
전화는 절망에서 나를 구해주었다.
3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험을 들었었는데
전산착오로 이제야 연락을 하게 되었다는 거다.

4천만원...

산...
여기서 살라는 계시구나.

아무 연고가 없는 도시 사천. 泗川
나는 산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부동산을 찾았다.
먼저 온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는 어딘지 낯이익었다.
그는 탈랜트였다.
이십여년 전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간간이 출연하던...

"어쩐지 낯이 익다 싶었어요."

"하하하 알아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팽팽하던 그의 얼굴은 주름살로 가득했고 허리는 구
부정해 보였다.

"이런 입지조건에 3천 500이면 정말 싸게 잘사는 겁니다.
앞에선 바다가 보이고 뒤로는 산이 포근하게 감싸주지않습니까?
전망으로만 친다면 우리나라 상위 5%안에 든다니까요.
하하하"

(부동산 업자의 차로 부동산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먹고 살자니 이 거라도 해야지요"

"출연하시는 드라마는 없나요?"

"아...예... 출연요청이 없네요 하하하"

“참 집에 산 이름이 뭐죠?”

“와룡산입니다. 해발 801미터. 용이 누워있는모습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죠.”

정붙이고 사는 곳이 고향이다.
무엇이라도 하긴 해야해서 나는 인력시장에 나가 일했다.
건설 현장은 물론 고기잡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기도 했다.
일이 없는 날에는 와룡산에 올라 사천시내와 바다를굽어보았다.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업자는 생활동선이 겹쳐 몇 차례 얼굴을 보았다.
그 때마다 그는 부인과 함께 있었다.

"저 나이에 부부가 팔짱을...
비록 연기자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좋은 여자 만나
행복하게 사는 구나"

매체를 통해 무명 연기자의 신산한 삶을 많이 들었던 탓일까?
나는 왠지 모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던 어느날 와룡산 올라가는 마주친 그의 머리는
아주 짧았다.

"저 KBS 드라마에 출연합니다. 돌아오는 일요일 9시
"제국의 석양" 꼭 보세요."

드라마에서 그에게 주어진 역은 고려시대 반란에 가담한승려.
대사는 몇 마디 안됐고 이내 죽임을 당했다.

'아 저 역할을 위해 머리를 깎았구나'
괜시리 서글퍼 눈물이 나오려 했다.

드라마 방영이 있은 지 한 참 뒤 마트에서 부인과 장을보는 그를 만났다.

"비록 드라마에선 일찍 죽었지만 현실에선 아주 오래 살겁니다. 암요 암~~~"

멀어지는 그의 모습은 더 이상 구부정해 보이지 않았다.

사천 생활 8년.
그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고 그의 소개로 만난
여자와 결혼을 했다.
결혼 1주년 우리는 특별한 이벤트 없이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섬멸한 바닷가를 함께 걸었다.


프란더즈의 개 책, 영화이야기

TV 만화 프란더즈의 개를 좋아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빠뜨리지 않고 보았다.
개구리 왕눈이와 더불어 가장 열심히 본 만화영화일 것이다.
브라운관을 통해 네로의 죽음을 바라보며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역시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렇게 비참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90년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란 책을
읽었다.
프란더즈의 개는 여기 실린 중편소설로 영국 여류소설가인 위더의 작품이다.
먼저 문장서술이 아주 좋았다.
글은 이렇게 써야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는
먹먹해지는 가슴을 어찌할 수 없었다.

오늘 페친인 강희영 선생의 포스팅을 보고 먼지가
수북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꺼내읽는다.
그 때느꼈던 것처럼 문장 서술이 좋다.
번역을 누가했는지 모르지만 참 잘했더라.
하지만 중간 쯤 읽다가 책장을 덮고 말았다.
파트라슈와 네로의 불행을 마주볼 자신이 없어서다.
독자들은 행복한 결말을 원하지만 작가는 독자의기대를 배반한다.
냉정하기 이를데 없다.
나라면 어떻게 결말을 냈을까?
모르겠다.
다만 나역시도 행복한 결말을 좋아하는 보통의독자란 것이다.


마음에 든 날적이(日記)


마음에 든~~~
작은 형이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기업은 고용을 창출합니다.
사람들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요.
기업이 무너지면 일자리가 사라져 생계를이어나갈 수가 없습니다.
기간산업을 이끌고 갈 대기업도 필요하지만
더 필요한 건 허리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입니다.
한 개의 대기업보다 열 개의 중소기업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합니다.
중소기업의 매출이 올라야 나라경제가 튼튼해집니다.
자기 브랜드를 가진 기업들이 많이 나와야합니다.
기업운영엔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청이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원청이되는 것입니다.
하청은 자신의 운명을 원청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뉴스를 통해 대기업 갑질에 시달리는 하청업체들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대기업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의 반도 받질 못합니다.
대신 원청은 오로지 자기 스스로 설 수밖에 없습니다.
형은 빈손으로 시작해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시련과 좌절을 딛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시장 상황이 하루하루가 달라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지만 다행인 점은 원청의 갑질이 없다는 것입니다.
갑이 있다면 오로지 소비자이지요.
원청은 없지만 경쟁업체는 많습니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직원들 급여를 줄 수 있습니다.
혹 가구를 장만하실 참이라면 마음'에든'으로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형의 신세를 많이 진 동생으로서 할 수있는 유일한일이 이거네요. ^^

가수 콩트

가수

어릴 때부터 노래가 좋았다.
노래를 부르면 모두가 좋아하며 박수를 쳤다.
집안 행사는 물론 학교행사가 있을 때마다 불려나가 노래를 불렀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날부터 남의 노래가 아닌 내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직접 노랫말을 쓰고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직장생활엔 흥미가 없었다.
마침 회사상황도 좋지않아 퇴사했다.
나는 미친듯이 작사작곡에 매달렸다.
지인들에게 들려주니 반응이 괜찮았다.
용기를 내어 음반회사를 찾아갔는데 믿기지 않게도 바로 계약을 하자고 한다.
정말 가수가 되는 것인가?
썼던 곡들을 다듬고 다듬어 녹음을 마쳤다.

나의 노래가 많은 사람들에게 불려지기를 간절히바랬다.
적어도 음반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싶진 않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음반이 나왔으나 지인들 말고는 사가는 사람이거의 없었다.
회사를 탓을 할 수도 없었다.
회사에선 나름 홍보를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녔으나 나의 노래는 곧 뭍히고 말았던 것이다.

쌓여있는 음반을 볼 때마다 속이 쓰리다.
그럼에도 나는 노래를 계속 불렀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의 노래보다 대중적으로 이미잘 알려진 노래를 듣고 싶어했다.
나는 사람들 요구에 맞춰 나의 노래가 아닌 다른 사람의 불렀고 반응이 좋아 업소에 불려나갔다.
직업가수가 된 것이다.
최저생활비에도 못미치지만 노래를 불러 돈을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오늘도 나는 무대에 섰다.
내가 작사 작곡한 노래를 불렀을 땐 별 반응이없는데 남의 노래를 불렀을 땐 박수소리가 크다.
어떤 이는 두번세번 앵콜을 외친다.
알 수 없는 슬픔이 가슴 한구석에 차오르지만그조차도 사치다.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행복하지 아니한가!
헌데 나도모르는 사이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다.


혜화동 답사 여행

2017.12.16


서울시민연대에서 주관한 혜화동답사.
문화해설사인 박광규 선생의 해설로 혜화성당,장면총리집,
재능교육사옥, 서울시장공관,혜화문을 돌아보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서울은 다니면 다닐수록 이야기 속으로빠져들게 하는 블랙홀이다.
마음 같아선 날마다 서울의 속살을 찾아 헤매고 싶지만현실은 녹록치 않다.
꿈만 먹고 살 것같은 나 역시 생활인으로서압박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산다.
남들처럼 빡빡하지는 않지만 마감이란 것이 있고사람으로 최소한의 도리를 아니할 수 없다.
결국 먹고사는 일로 모든 일은 귀결된다.

답사가 끝난뒤 점심은 혜화문 밖에 있는 청국장집에서 했는데 박광규 선생이 나더러 한겨레에
있는 박흥용과 이미지가 비슷하다고 하셨다.
'만화가 박흥용?'
박흥용 선생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나는 물었다.
"박흥용 선생이 한겨레 신문에 다녀요?
아니면 거기 연재를 했었나?"
나의 질문에 선생은 잠시 멈칫하더니 자신은 연도엔강한데 이름엔 약하다며 박흥열이라고 수정 하시었다.
아마도 한겨레신문에 박흥렬이란 분이 근무를 하시는모양이다.
뜻밖에 선생은 박흥용이란 작가를 잘알고 계셨다.
박흥용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줄줄이 꿰었다.
솔직히 내게 박흥용 선생은 관심밖의 작가다.
초기 발표한 단편들을 모아 책으로 묶은(청년사)"백지(?)"를 본 게 전부다.
책이 앞에 있어도 그닥 읽고싶은 생각이 안들었다.


개인적인 교류도 전혀없다.
간간이 한다리 건너 소식을 들을 뿐이다.
박광규 선생은 박흥용의 작품이 노벨상감인데이상하게 뜨지 않는단 말씀을 하셨다.
관심밖의 작가였지만 그 분의 만화를 높이 평가해주시니 만화인으로서 고마웠다.

나이가 들어서도 만화를 본다는 건 사고가 깨어있단증거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활자로된 책도잘 안볼 뿐 아니라 만화는 더더욱 보지 않는다.

나는 한 사람의 열혈독자를 가지고 있는 박흥용선생이 부러웠다.
그분이 발표한 분량만큼 나도 내 작품을 세상에내놓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나와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박흥렬이란 분도궁금해졌다.
박광규 박흥렬 두 분은 천주교인으로 같이 알고 지내는듯 했다.


픽마이 웹툰전 날적이(日記)

2017.12.13

동숭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픽마이 웹툰전에 손님으로 와 그림 하나 그렸다.
토토돌스 대표 송병헌 대표에게 드리는...
토토돌스는 만화 캐릭터 인형을 만드는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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