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단지 에세이(手筆)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을 때 전체맥락을 파악하기보다
한 단어에 집중해 엉뚱한 생각을 하곤했다.
A를 A라고 하며 B를 생각하고 C를 C라고 하면 곁가지로 빠져 D를 생각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틀린 답을 하고친구가 고민을 이야기 하면 전혀 다른 해법을
내놓아 타박을 듣기도 하였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위를 가져오라고 하면 전혀 다른 식으로 이해해실을 가져왔다.
어머니가 친척 아무개의 신의 없음을 말하면 나는방정맞은 친척의 태도에 말했다.

" 넌 왜 뚱단지같은 소리만 하냐?"

어머니는 말귀가 어두운 나를 언제나 뚱단지를 들어나무라셨고 그 때마다 나는 억울했다.
그게 왜 뚱단지같은 소리냐고 항변하고 싶었다.
분한감정을 삭이지 못한 나는 어느새 만화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만화가게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고 돌아온 난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었다.

나의 뚱단지같은 소리는 계속 이어졌지만 세월이 흐르며 횟수가 줄었고 지금은 아무도 나를 향해
뚱단지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자라면서 수없이 들었던 말 뚱단지.
뚱단지가 풀이름이란 것을 처음 안 것은 삼십대 중반으로 자연생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다.
여름이 끝날 무렵 들녁 한자리에 핀 아름다운 꽃을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루는 뿌리를 캐서 먹었는데 맛이 감자 비슷했다.
뚱단지와 함께 돼지감자라 불리는 이유다.
그런데 돼지감자란 이름엔 시적 은유가 없다.
있는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
그에 비해 뚱단지엔 이야기가 있다.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가을이 가기 전 뚱단지나 한 번 더봤음 좋겠다.


2017.9.28 설악산 오색 약수 주차장에서 폰으로 쓰다.  


마츠오 바쇼의 하이쿠 그림(畵)

일본을 대표하는 하이쿠 시인 마츠오 바쇼를 안 것은홍서범이 부른 김삿갓을 통해서였다.
중국의 이태백~ 일본의 바쇼~ 그렇다면 보여주자
한국의 김삿갓~
김삿갓 ~~ 김삿갓~~~~ ...
한국 최초의 랩으로 평가받는 노래였지만 대중의 뇌리에금세 잊혀졌다.
노래를 기억하는 것은 소수 몇몇 사람 뿐이었고 나도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이 노래를 흥얼거리곤 한다.

마츠오 바쇼의 시집을 사서 읽은 것은 2010년이었다.
시 한편의 길이가 열 일곱 자.
시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시 한편 한편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자연을 소재로 한 시가 많아서인 것 같다.
술 취해 바위에 누워 자고 있는 이.
그 앞에는 사랑스러운 패랭이꽃이 피어있는데 그리기가참 까다롭다.
색을 입히면 입힐수록 탁해지는 것도 문제고.

패랭이는 조선에서 천민들이 쓰는 모자다.
하지만 일본에선 패랭이꽃에 담긴 의미가 전혀 다르다.
일본에 사시는 얼벗 Naeyoung Kwon님 글에 따르면패랭이꽃을 나데시코(ナデシコ)라 부르는데 야마토
나데시코(大和撫子)라 하여 일본 여성을 일컫는 말로쓰이기도 한단다.
같은 꽃을 보면서도 어찌 이리 다르게 부를 수 있는지신기하기만 하다.
덧붙이자면 우리 집 거실엔 용인민속촌에서 산 패랭이가
안동 하회마을에서 산 담뱃대와 함께 걸려 있다.


사패산 1보루 2보루

미세먼지로 가득한 오늘.
사패산 1보루를 (386m) 오른 뒤 내친김에 2보루(390m)까지 올랐다.
도봉산 포대능선과 사패산 정상이 기울어가는 태양빛으로어두웠고 수락산은 미세먼지로 흐렸다.
보루에서 한참동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누워있었다.
까마귀들이 하늘을 선회하다 산 정상을 향해 멀어져 갔다.
나뭇잎들은 푸르른데 개옻나무가 혼자 잎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산 위에서 물들이기 시작한 나뭇잎들은 머지않아 산 아래로불태우며 내려가겠지.
산 아래 세워두었던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인기척없는 텅빈 방이 나를 반긴다.
부재중전화가 떠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지나는 길에 들러볼까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더란다.
샤워를 하고 몸무게가 궁금해 체중계에 올랐더니 보름전보다 1킬로그램이 불어있었다.
1키로가 줄어들어도 모자랄 판에 되려 늘다니...
그래도 굶을 순 없어 밥을 차려먹고 배 하나를 깎아 먹었다.
몸이 노곤하니 원고 조금만 하다 자야겠다.

근초고왕과 독산성 에세이(手筆)

백제 초기역사는 고이계와 초고계의 싸움으로 요약된다.
유력한 두 세력이 물고 물리며 왕위쟁탈전을 벌였고 때로는왕이 자객의 손에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백제 최 전성기를 이끈 근초고왕 또한 이 같은 혼란 속에왕위에 올랐다.
반대파들을 제거하고 왕권을 안정시키는 것이 왕에게부여된 최대 과제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왕 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독산성 성주가 성민 300을 이끌고 신라로 달아났다고.
왕위 쟁탈전에 실패한 세력은 살아날 가망이 없다.
적국인 신라로 달아나 재기를 도모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내물마립간 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있다.
백제왕이 성주를 돌려보내라고 요구했지만 일언지하에거절했다고.
그리하여 백제왕은 더 이상 성주를 돌려보내란 말을 하지않았다고.
아마도 당시 백제는 신라를 압박할 힘이 없었던 것 같다.
이후 백제는 안정된 왕권을 바탕으로 마한을 완전병합하고 요서로 세력을 넓힌다.
백제의 영광은 근초고왕의 아들인 근구수왕으로 이어져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평양 전투에서 화살로 쏘아 죽인다.

경기도 오산의 독산성은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말을 씻겨적을 물리쳤던 것으로 유명하다.
한양을 점령한 왜군은 후방에서 올라오는 조선군을차단하기 위해 독산성을 에워쌌다.
대장은 용맹하기 이를데 없는 가토 키요마사였고 병력은2만이었다.
독산성은 물이 없어 오래 버틸 수 가 없었다.
이 때 조선군 사령관 권율은 기지를 발휘했다.
말 위로 쌀을 부어 물이 많은 것처럼 위장한 한 것이다.
공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수.
식수만 있다면 적은 언제까지 버티리라.
전선의 확대로 가토는 마냥 독산성에 머무를 수 없었다.
가토는 키요마사는 말머리를 돌려 군대를 철수했다.
씻을 세 말마 대대.
왜군이 물러간 뒤 사람들은 말을 씻었던 곳에 세마대란이름을 붙였다.
독산성에 대한 기록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나온다.
1597년 백의종군하기 위해 삼남으로 내려가던 이순신은수원판관과 함께 독산성 아래에서 장막을 치고 술을
마셨다고 한다.

수원에서 발원한 황구지천은 독산성을 감싸며 흐른다.
내가 독산성을 처음 올랐던 것은 2001년 독산성 아래 있는한신대 앞으로 이사를 와서였다.
독산성에 오르면 황구지천이 은빛으로 빛났고 모래톱 위를날고 있는 새들이 평화로웠다.
어느 날 나는 성 아래로 내려와 모래톱 위를 걸었다.
최대한 멀리까지 가는 것이 목표여서 모래톱을 건너뛰다
웅덩이에 빠져 발목을 적셨다.
모래톱위에서 신발을 말리며 나는 독산성에 주둔했을 백제병사들을 생각했다.
백제 병사들은 때때로 황구지천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말을 씻기고 옷을 빨고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삼삼오오 모여 씨름을 하였으리라.
여름엔 웃통을 벗어던지고 고기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모래톱 풍경을 복사지에 에스케치형식으로 그렸다.
의뢰받은 것이 아니어서 더이상 그리지 않고 에스케치로끝냈다.

독산성 아래 안녕리에 살다가 이사간 곳이 오산이었다.
오산 시민으로 10년을 살았고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독산성을 올랏다.
그리고 어제.
의정부에 이사온 지 몇년 만에 다시 독산성을 올랐다.
황구지천은 독산성에 처음 올라 바라보았을 때만큼아름답지 않았다.
하천 정비 사업으로 그 많던 모래톱이 사라지고 없었던것이다.
물위를 날던 그 많은 새들도. .


동생 날적이(日記)

동생은 자기 브랜드를 제조하고 판매한다.
사업초기부터 고전에 고전을 거듭했고 지금도 상황은녹록찮다.
이따금 일본에 물건이 한 트럭 실려 나가기도 하는데 언발에 오줌누기일 때가 많다.
어제는 오산 가는 길에 화성에 있는 동생 사업장을 들렸다.
임대해 쓰고 있는 건물 두개 동이 물건과 사람으로 빽빽했다.
일을 함께 하고 있는 누나와 매형을 뺀 직원이 열 두명이란다.
주차장을 가득 채운 차들은 대부분 직원들 차였다.
대중교통이 많지 않아 대부분 차로 출퇴근 한다.
내 차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는데 동생이 차에기름이 없는 것을 보고 기름을 가득 채워 주었다.
덕분에 한 동안 기름 눈금을 신경쓰지 않고 차를운행할 수 있게 되었다.

동생은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힘들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언제나 밝은 표정이다.
조금만 힘들어도 오만상을 다 찌뿌리는 나와 많이 다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애국자는 고용을 창출하는 사람이라고생각한다.
열 두명이 동생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번다.
풍족하진 않지만 그 돈으로 먹고 자고 입는데 쓸테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횡포로 인해 살길이 없다고 한다.
어렵게 기술개발을 해도 대기업이 빼앗아간다.
하청업체와 대기업은 동등한 협력관계가 아니다.
대기업이 하청업체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동생이 대기업의 적접 피해자는 아니지만 대기업의 횡포가
중소기업인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중소기업이 튼튼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동생 회사가 있는 화성 일대를 돌아보니 골목골목마다공장이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것은 제조업임을 실감했다.


결혼 날적이(日記)

이십대에 결혼한 한 여자는 결혼한지 1년도 안되어 주위사람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했단다.
나와 소개팅으로 만났던 여자다.
내가 말을 꺼내기 전까진 한마디도 하지않아 조금 답답한 느낌을 주었는데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니 어쩔 수 없이 성대제거수술을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만약 나와 결혼했어도 주위사람에게 결혼하지말라고 했을지 궁금하다.

어제는 결혼을 해서 너무 좋다는 여자분을 만났다.
결혼 16년 차로 선을 백번 쯤 본뒤 결혼에 골인했는데그 때 나이가 서른다섯이었다고 한다.
만약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너무나 이쁜 두아이가생길 수 없었을 거라며 결혼을 서두르라고 했다.
"임자가 있어야 결혼을 하지요.
여자들이 얼마나 조건을 따지는데요."
결혼이 얼마나 힘든가에 대해 말을 하는데 노력을 더 하란다.
자기 신랑은 결혼할 때 아무 것도 갖고있지않았다면서 나의 조건은 충분하다고 했다.
강연할 때 그 솔직한 태도로 여자를 대하면 다 넘어온단다.
"정말요?"
"그럼요."

똑같이 결혼을 했지만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다르다.
어제 만난 여자분은 밝은 기운으로 가득차 있었다.


산 그림 그림(畵)

2017.9.23
초가을.
아직은 단풍이 들지 않은 산과 들.
나들이 대신 산에 올라 바라본 풍경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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