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23일
패랭이꽃
뒷산 무덤가에서 피어 있던 패랭이꽃. 단원 김홍도 그림에도 등장한다.   
 
by 모두루 | 2008/07/23 18:04 | 사진(photo) | 트랙백 | 덧글(0)
2008년 07월 22일
솔방울

새로 장만한 캐논 450D 로 찍은 사진.
국어사전 왼 편은 구과인 측백나무의 그것과 삼성산 돌, 오른 편엔  창경궁 솔방울이다.
by 모두루 | 2008/07/22 01:30 | 사진(photo) | 트랙백 | 덧글(0)
2008년 07월 20일
달맞이꽃 Moonlight Flower

인간이 여느 동물과 구별되는 것은 뭘까?
직립보행, 도구의 사용, 언어와 감정의 표현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강력한 특징 중 하나는 소유에 대한 욕구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인류역사는 소유를 둘러싼 갈등으로 요약된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
그러한 욕구가 고도화된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낳았고 우리는 자본의 지배아래서 단 하루도
자유로울 수 없다.
소유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본은 우리를 결박하고 우리는 자본에 봉사하는
것으로 생의 대부분을 보낸다.

더 큰 평수의 아파트, 더 큰 자동차, 더 좋은 휴대전화 ,더 좋은 디자인의 옷감...

나 역시 더 큰 아파트에 더 큰 자동차 더 좋은 휴대전화를 원하며 더 좋은 질감의 옷을 걸친 채 거리를 활보하고 싶다.
더 많은 전자기기로 생활의 편리함을 누리며 더 많은 책과 음반으로 지적 편력과 문화적
소양을 뽐내고 싶다.
밤이 깊은 시간,
아이스크림을 사먹기 위해 편의점으로 가다 한 무더기의 노란 꽃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달맞이 꽃이었다.
식물도감을 통해 보긴 했지만 눈으로 직접 보긴 처음이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 무척이나 좋아했던 노래  ‘Moonlight Flower’의 선율이 달빛을 타고 들려오는 듯 했다.
김추자가 부른 ‘달맞이 꽃’도 어렴풋이 생각났다.

달맞이꽃을 향해 지니고 다니던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노출 값을 올렸지만 너무 어두운 나머지 후레쉬가 터지고 카메라 액정엔 형광색 꽃들만 보였다.
후레쉬 불빛이 물기 머금어 촉촉한 꽃을 프라스틱 인공조화로 만들고 있었다.
몇 번을 반복하며 셔터를 눌렀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여느 꽃들과 달리 밤에 피고 낮에 오므리는 꽃.
활짝 핀 달맞이꽃을 카메라 앵글에 담기 위해 주저 없이 꽃들을 꺾었다.
적어도 집에 들어가면 밝은 전등아래 노출걱정을 하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꽃은 이제 온전한 나의 소유.  
물병에 꽂힌 꽃은 나를 위해 향을 뿜고 날이 밝아올 때까지 그 노란 꽃잎을 펼쳐 보일테다.

사진 한 장을 위해 줄기 째 꺾여 버린 달맞이꽃을 바라보며 아름답단 생각을 하다 이내 섬짓해진다.
자연의 아름다움마저 소유하고 말겠다는 그 무서운 욕망이 두려운 것이다.
오늘도 산과 들을 헤집으며 돌을 캐고 나무를 뿌리 째 들어내는 사람들.
수석이란 이름으로 돌은 있던 자리를 떠나고 나무는 정원수란 이름으로 여기저기서 파헤쳐진다.
자연은 원래 있던 그 자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법이지만 인간의 욕망은 기어이 산과 들을
헤집고 그 안에 깃든 무수한 생명까지 앗아간다.

어쩌면 외래식물이어서 달맞이꽃을 더 쉽게 꺾었는지도 모른다.
내 자리를 차고 들어온 불청객이란 생각이 내 의식 어딘가에서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셔널리즘의 발현이라면 발현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소유에 대한 열망이다.
기필코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소유에 대한 열망이 유전자 깊이 각인 돼 있어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꽃을 꺾고 나무를 꺾는 것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소유하려는 이.
틀림없이 여느 인간들처럼 자본의 노예가 되어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한 생을 마감할 것이다.
더러는 자본의 달콤함에 취하다가도 끝내는 자본에 휘둘려 몸조차 가누지 못하리라.
그럼에도 외친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싶다고.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 더 큰 배기량의 차, 더 큰 텔레비전, 더 좋은 옷과 먹을거리.그리고 멋진 여자 ...

지금도 내 안의 욕망은 진화하고 있다.

  
by 모두루 | 2008/07/20 03:10 | 에세이(手筆) | 트랙백 | 덧글(0)
2008년 07월 14일
적벽대전-거대한 전쟁의 시작


라디오 연속극'삼국지'를 듣기 위해 꼭두새벽 졸린 눈을 비벼 뜨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제 나이 열 한 두살 무렵이었는데 '내일 이 시간에'라는 나레이터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중학교 때엔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 일부를 보았고
고등학교 1학년 땐 한학자 김구용이 번역한 "삼국지" 전 권을 읽었습니다.
이십대엔 이문열의 "삼국지" 를 읽었죠.
특히 이문열의 삼국지는 한 번 읽은 뒤에도 몇 번을 거듭해 읽었습니다.
문득 삼국지의 한 대목이 궁금해 책장을 펼쳐들면 어느덧 한 권을 다 읽고 다음 권으로 넘어가는 악순환(?)이 계속 됐던 거죠.


삼심대엔 삼국지에 대해 기술한 책들을 몇 권 봤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 순위를 매기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책에서부터 당 시대의 사회상을 심도있게 고찰한 책까지
어느 것 하나 재밌지 않은 게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시리즈 "삼국지"도  볼만했습니다.
삼국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해석은 없었지만 엄청난 공력으로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불혹의 나이인 2008년 7월. 
영웅본색, 첩혈쌍웅, 브로콘 애로우, 페이스 오프의 감독, 오우삼이 만든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을 서울의
한 극장에서 보았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스토리라인은 부자연스러운 면이 좀 있지만 그래도 죽여주더군요.
삼국지의 영웅들이 저렇게 스크린 위에 살아 움직이다니...
특히 영화 후반부에 보여준 구궁팔괘진이라는 진법묘사는 압권이었죠.
어떻게 저런 걸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며 새삼 인간이란 존재가 무섭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개인은 무력하기 그지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재능이 모이고 그 재능을 시험케 할 자본이 뒤따를 때 바로 "적벽대전"과
같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거겠지요.


암튼 입장료 8000원이 아깝지 않았고 한 번 더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알아보니 제가 사는 오산에선 입장료가 6,000원에 조조나 심야는 5,000원이라네요.
그래서 조만간  한 번 더 극장을 찾을 생각입니다.
제가 나름 삼국지 매니아라면 매니아니까요.

헌데 왜 삼국지를 만화로 그려볼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을까요?

by 모두루 | 2008/07/14 02:35 | 날적이(日記) | 트랙백 | 덧글(0)
2008년 07월 13일
지지난 주 수락산
산은 저마다 그 생김이 다르고 같은 산이라 할지라도 계절에 따라 그 얼굴을 달리한다.
수락산도 마찬가지였다.
2006년 겨울, 올랐던 수락과 이번에 오른 수락의 모습은 완연히 달랐다.
핏기하나 없이 메마른 노인의 얼굴에서 볼 살이 부풀어 오른 젊은 여인네로의 변신이랄까?
피어오를 대로 피어오른 젊은 여인의 얼굴.
겨울은 물론 봄과 가을 역시 볼 수 없고 여름 한 가운데서만 볼 수 있는 풍경.
한마디로 수락은 녹음으로 깊었다.


이 짙은 녹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태양이다.
식물의 이파리들이 태양에게서 쏟아지는 녹색파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밀쳐내기에 녹색으로 남는 것이다.
가장 흔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색 녹색!
녹색이 깊을수록 많은 생명이 깃든다.
먹이사슬의 최고 정점인 맹수로부터 지상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곤충에 이르기까지.
녹음이 우거진 숲에서 오늘도 사람들은 심신의 피로를 풀고 내일을 준비한다.


연, 택, 린. 이 세 남자.
세 남자는 전철 7호선역인 수락산 1번 출구로 나와 김밥과 토마토, 오이, 막걸리, 그리고 물을 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던가!  
먹을 걸 챙긴 세 남자는 덕성여대 별관(?)이 있는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조선시대 실력자였던 아무개의 별장이 있었던 곳으로 지지난 겨울 내가 올랐던 코스이기도 하다.

하늘높이 치솟은 나무들로 햇빛 한 잠 들지 않는 등산로엔 무수히 많은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며 자라고 있었다.
물박달나무, 좀깨잎나무, 밤나무, 상수리나무, 낙엽송, 리기나소나무, 조팝나무, 가죽나무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는 여느 산보다 가팔랐고 가파른 계곡마다엔 냇물이 시원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등산로를 따라 오르던 세 남자는 약수터의 물로 갈증을 잊는다.

하지만 정작 숲에 깃들어 사는 들짐승날짐승은 이 물을 마시지 못한다.
그들이 마셔야 할 물을 인간이 빼앗는 것이다.
그렇게 오만과 탐욕으로 가득 한 인간은 먹이사슬의 절대강자로서 군림하다 최후의 날을 맞이하리라.
1억 몇 천 만 년 전 사라진 절대강자 공룡처럼. 


언젠가 최후를 맞이하게 될 인류의 선조로서 산을 찾은 세 남자.
세 남자는 등산로에서 무수히 많은 나무들을 보았다.
그 가운데서도 생강나무와 작살나무, 국수나무, 노린재나무는 수형의 특이함으로 눈에 잘 띄는 나무였다.
그 외 사철나무, 회양목, 팥배나무, 가죽나무, 벚나무, 물오리나무, 떡갈나무, 개옻나무, 산초나무,
주목, 신갈나무, 철쭉, 전나무가 싱그러운 모습으로 등산로를 오르는 세 남자를 지켜보았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와의 만남은 땀을 한 바가지 가까이 쏟은 뒤에야 이루어졌다.
숨이 깔딱 넘어간다는 깔닥고개에 올라서서야 그 구불구불하고 꺼칠꺼칠한 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낸 것이다.


소나무는 햇볕을 좋아하는 양수이다.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 산 능선이나 바위비탈에 많다.  
능선 아래라 해서 소나무가 싫어할 리 없지만 그 곳은 이미 참나무류와 같은 음수가 차지한지 이미 오래.
인간의 간섭으로 지난 몇 천 년 간 숲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소나무는 이제 능선과 바위비탈에 밀려나 설 자리가 없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그나마 있던 자리에서 더 밀려나야 할 판이다.
소나무가 이 땅에서 점점 사라져 감은 식생천이(식물의 생장에 의해 숲의 모습이 바뀌는)의 자연스런 과정이지만
정들었던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처럼 아쉬운 일이다.
그만큼 소나무는 우리 한국인의 심상에 깊이 새겨져 있어서이리라.  

소나무의 등걸을 만지며 깔닥고개를 지나고 배낭바위를 거쳐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
철심을 의지하지 않고는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바위투성이의 등산로였지만 2006년 겨울처럼 험하지는 않았다.
잦은 인명사고로 위험 구간마다 나무 계단을 설치한 때문이었다.


소나무와 함께 등산로 곳곳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나무.
노간주나무였다.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햇볕을 좋아하는 양수로서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노간주.
산 능선 바위비탈면에 자라고 있는 노간주나무는 이러한 생장조건의 결과이다.
그러나 노간주나무 역시 척박한 곳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척박한 곳에서 잘 견디어 낼 뿐이다.
모진 비바람과 추위를 견디며 자라는 소나무의 한 살이와 노간주나무의 한 살이가 어쩌면 그리 닮았는지...


세 남자는 산을 오르지 두 어시간만이 지나 해발 620m 수락산 정상에 선다.
산 정상은 한 점 그늘도 드리우지 않는 바위투성이.
지금으로부터 일억 몇 천 년만 전, 화산활동의 결과로 치솟은 용암덩어리가 비바람에 깎이고 깎이어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한 여름 따가운 햇살 아래 세 남자는 사방을 조망한다.   

사방은 아득히 멀었다.
비가 온 뒤 먼지가 걷히면서 시계가 그만큼 멀어진 것이다..
남북으로 길게 흐르는 중랑천 너머엔 도봉산과 북한산이 수려하고 이 곳 수락산에서 줄기 뻗은 불암산과 용마산이 
우뚝 솟아 인구 1000만의 도시 서울을 감싼다. 
봉수대가 있던 봉화산은 도심 한가운데 외로이 떠있어 그 시작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지난 100년 간 이어진 도시 개발로 산줄기마저 가늠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사방을 조망하던 세 남자는 정상 어디메 쯤에서 김밥을 먹은 뒤 장암역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산을 올랐으니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은 것이다.
하산 길에 본 소나무들 대부분 정아우세현상의 소멸로 꾸불꾸불하고 그 꾸불꾸불한 소나무 아래는 진달래가 
무리지어 자란다.
척박한 땅에서 유독 잘 자라는 진달래는 소나무와 운명을 같이 한다.
봄날 흐드러지게 만개했던 그 고운 진달래 꽃을 볼 수 없음은 안타깝지만 그 또한 식생천이의 자연스런 과정. 
대신 그늘에서 잘 견디는 철쭉이 진달래의 자리를 대신 할 것이다.
진달래와 마찬가지로 철쭉 또한 등산로 곳곳에 뿌리를 내리며 자라고 있었다.

등산로엔 진달래 철쭉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린내가 나는 누진장 나무, 꽃아까시와 모양새가 비슷한 땅비싸리가 드문드문 자라고 있었고 쪽동백나무는
지천으로 볼 수 있었다.
키 작은 풀들 역시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바위틈마다 피어난 노란 양지꽃이 앙증맞고 꿩의 다리는 등산로 곳곳에 피어 바람에 흔들렸다.
까치수염은 그 특이한 모양새로 인해 여간해선 잊지 않을 것 같다.


등산로를 따라 얼마 쯤 내려왔을까?
바위계곡이 이어지며 맑은 물소리가 들렸다.
더위에 지친 세 남자는 곧 그늘진 너럭바위에 앉아 신발 끈을 풀었고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물이 어찌나 차가운지 발은 금방이라도 얼 것 같았고 물 위로 띄운 막걸리는 이내 차가워졌다.   
막걸리 몇 순배와 시덥지 않은 남자들의 말 말 말...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이내 현실세계에 발 담가야 했던 세 남자였지만 이렇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순간만은 신선이었다.
절대 권력자 진시황과 한무제가 그토록 염원했던 신선...


잠시 신선이 되었던 세 남자는  대웅보전(大雄寶殿)이란 한자 현판대신 ‘큰법당’이란 한글 현판을 단 석림사
일주문을 지나 장암역으로 향하는 사이, 꽃개오동, 붉나무, 산수유, 명자나무, 살구나무. 인동나무를 보았고
애기똥풀, 고사리, 질경이, 달개비 등의 풀을 보았다.
그리고 수락산 아랫마을을 지나 장암역 육교에 올랐을 때 수락산역에서 아파트와 빌딩에 가려 볼 수 없었던 
수락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이곳 장암역에선 남김없이 그렇게...

by 모두루 | 2008/07/13 23:04 | 여행 | 트랙백 | 덧글(0)
2008년 07월 11일
노랑무늬날개가지나방

동이 트기 전, 베란다 창을 통해 들어온 녀석은 형광 불빛을 향해 자꾸만 달려들었다.
날개를 접어 쉴만한 공간도 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달려든다.
그렇게 불빛을 향해 달려들던 녀석은 바닥으로 내려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랜 날개짓으로 기운이 소진,날개조차 접을 수 없었던 녀석...

무엇때문에 녀석은 죽자살자 불빛을 향해 날아들었을까?
나방이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이유를 어떤 책에서 설명했지만 책장을 덮음과 동시에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유야 어쨌든 한 나절 집을 비운사이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기운을 회복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갔을 것이다.
나방치고는 무늬가 아름다워 렌즈에 담을 수 밖에 없었던 녀석.
그래 어딜 가든 잘살고 다시는 그 허망한 날개짓으로 기운을 빼지 말라

사람들이 말하지 않든.
부나방처럼 모여든다고.
그건 권력 주변에서 떡고물을 얻고자 하는 모리배와 일확천금을 꿈꾸는 도박꾼들을 싸잡아 일컫는 아주 지랄같은 말이란다
by 모두루 | 2008/07/11 22:12 | 날적이(日記)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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