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장모 에세이(手筆)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지 못하는 소수의 사람이 있다.
소시오패스 혹 사이코패스다.
전체 인구의 몇퍼센트라 한다.
학창시절 자기 주먹을 믿고 몸이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놈들이 있었다.

대개 학교를 중퇴하고 어둠의 세계로 빠진다.
소위 말하는 조직폭력배다.
놈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가린다.
놈들의 특징은 약자에겐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겐 한없이 약하다는 거다.
조폭을 낭만적으로 그린 소설 영화 만화 드라마들이 숱하다.
우리사회를 좀먹는 흉기다.
창작자로서 나는 이런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는 이들을 혐오한다.

소시오패스는 화이트칼라에도 많다.
권위주의 정권시덜 공안검사였던 김기춘 정형근 곽상도 우병우 등등이 그렇다.
이들은 권력을 위해 사건조작을 서슴치 않았다.
이들로 인해 억울하게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하고 또 목숨을 잃은 이가 몇인지 헤아릴 수가 없다.

국가권력을 등에 업지 않지만 교묘한 말로 사람을 속이는 사기꾼들이 있다.
자기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남들이 피눈물을 흘리면 흘릴수록 행복하다.
현 검찰총장인 윤석열 장모와 그의 처 김건희가 그렇다.
이들은 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뒤봐줄 권력을 찾는다.
양모검사가 그렇고 윤석열이 그렇다.
든든한 빽이 생기자 이들은 더욱더 과감해진다.
최근 추적탐사보도인 mbc 스트레이트를 통해 이들에게 억울하게 재산을 빼앗기고
옥살이를 한 이들의 증언이 뒤따르고 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이 있다면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윤석열의 장모와 처는 반회적인간 즉 소시오패스이다.
윤석열도 마찬가지다.
조국장관과 일가족에 대한 수사는 차마 인간의 행동이 아니다.
윤석열에게 상식과 정의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
오로지 기득권 사수에 혈안이 돼 있을 뿐이다.
그런 인간을 검찰총장에 앉혔던 문재인 정부의 안목이 아쉽다.
덕분에 평생 검찰개혁을 소명으로 삼았던 조국장관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들 사이코패스에겐 든든한 우군이 있었다.
언론이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신문 뿐 아니라 진보를 자처했단 경향과 한겨레까지 조국
장관에 대한 파상공격이 이어진 것이다.
이들 언론은 앞다투어 검찰이 흘리는 정보를 받아적었다.
진실보도는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던져버리고 검찰의 개가 된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소시오패스의 탄생을 막을 순 없다.
하지만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도록 놔둬선 안된다.
그들이 활동할 환경을 차단시켜야한다.
백일하에 드러난 윤석열 장모와 처의 범죄.
윤석열을 법정에 세우기 전 이들 모녀를 처벌해야 할 것이다.


심익현 에세이(手筆)

유튜브 방송 " 일당백-일생동안 당신이 읽어야할 책 100권"에서 진행자 정영진씨가 말했다.
심익현 선생이 어쩌고 저쩌고.
요는 한국 남성이라면 그 양반을 모를리 없다는 것이었다.
근데 정말이다.
난 첨 들었다.
궁금증이 일어 검색을 해보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여성과 합을 맞췄으면서도 누구보다 건강하단 것이었다.
자기관리가 철저한듯 했다.

몇년전이다.
여행 중 우연히 만난 한 사내로부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처음 여성과 관계를 가졌던 이야기부터 일생동안 거쳐간 여자들 이야기였다.
사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여자와 관계를 가졌고 어제도 처음 만난 여자와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사내와 만난 여자들의 층도 다양해서 학력이 낮은 여성부터 인텔리 여성까지 두루두루 합을 맞추었다.

그에겐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
스포츠경기도 그렇고 도박도 그렇고 승패가 나뉘어 누구는 웃고 누구는 운다.
하지만 섹스는 윈윈하는 게임이다.
생활인으로서도 그는 남달랐다.
저축도 하지 않을 뿐더러 보험 또한 들지 않는다.
내일을 기약하기보다 오로지 오늘을 위해 사는 삶이었다.
한편으론 부럽고 한편으론 처연한 생각이 들었다.

숫컷에게는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퍼트리려는 욕망이 있다.
그런 면에서 사내는 욕망에 충실하다.
눈에 띄는 외모는 아니지만 사내는 뛰어난 화술로 여자를 사로잡는 듯했다.
사내는 외모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남성들의 희망이다.
문제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다.

누구는 말할 것이다.
한 대상과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지 못한채 배설의 욕구만 있을 뿐이라고.
그렇지만 예단할 순 없다.
평생을 같이살면서도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부부가 있는반면 짧은 시간 깊이 사랑하다 헤어지는 연인도 있을테니.
적어도 사내는 여성과 만나는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한다.

사내와 만남 이후 사내를 소재로 만화를 그려볼까 싶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성애를 표현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는 내내 흥분상태에 빠져있어야는데 그보다 더 힘든일이 있을까 싶었다.
누구보나 관능적인 장면을 잘 그려보고 싶지만 나는
나의 한계를 안다.


비교화법 에세이(手筆)

지인은 종종 비교화법을 구사한다.
대부분 장단을 맞추어 주지만 간혹 심사가 뒤틀려 입을 닫는다.
예를 들면 이런식이다.

좌와우 어느 한 곳에 매몰되지 않았던 여운형의 균형잡힌 행보를 말하면서 김구를 깎아 내린다.
여운형이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한 김구를 깎아내려야하나?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로치 감독의 작품을 칭찬하는 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칭찬 말미에 봉준호보다 몇수 위라고 말한다.
켄로치 감독의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봉감독이 몇 수 아래는 아닌 듯 했다.
봉감독도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켄로치가 받지못한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받았다.

 로버트 달의 소설은 유머가 있다고 한다.
은근하면서 능청스럽다.
성석제의 작품세계도 그렇다.
지인은 성석제가 로버트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마치 아류인 것처럼 말로 마무리한다.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이 있으면 그 인물만 말하면 되었다.
공명하는 작품이 있으면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 되었다.
그런데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꼭 누군가를 끌어온다.

비교당해 기분좋을 사람 아무도 없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누군가를 칭찬하려고 누군가를 끌어오곤 했었다.
비교분석이란 명목으로 말이다.


방언 에세이(手筆)



화성에서 일년 남짓을 살았는데 스트레스였다.
어딜 가면 꼭 화성연쇄살인을 이야기했다.
하다못해 중들조차 첫마디로 하는 말이 연쇄살인사건이었다.
화성을 떠나고 싶었다.
마침 작은형수가 빌라에 세들어 사는 대신 아파트에 사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감히 꿈꿀 수 없었던 아파트였지만 맘을 먹으니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대출을 최대한 많이 받아 오산 변두리에 있는 아파트를 샀다.
18평짜리 오래된 아파트였다.
어딜 가더라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입에 올리는 이가 없었다.

서울 아래 도시가 안양 수원이고 수원 아래 도시가 화성 오산이다.
서울과의 거리는 50킬로미터.
차만 막히지 않으면 한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다.
컴퓨터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컴터 가게에서 사람을 불렀다.
1인가게로 사장은 고향이 오산 덕절리라고 했다.
컴터를 고치는동안 항상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사장님 말투가 서울과 달랐다.
어딘지 모르게 충청도에 가까웠다.

평택은 오산에서 차로 30~40분 거리.
조선시대엔 충청도였다 행정구역이 개편되며 경기도가 되었다.
가끔 평택에 가 어르신들 얘기를 들으면 말투가 충청도 쪽에 가깝다는 걸 느꼈다.

말씨에 민감한 사람들은 금세 내가 어느지역 출신인지 알아차린다.
열두살에 서울로 올라왔지만 기본 억양은 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김제사람으로 장성사람인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갓난아기일 때 잠시 장성에 살기도 했지만  열두살까진 김제에서 살았다.
돌이켜보면 사투리를 참 많이썼다.
말을 시작할 땐 언제나 긍게를 말머리에 붙였고 형을 성, 부추를 솔, 공책을 작기장, 학교를 핵교라 했다.
한번은 서울서 사촌형이 내려왔는데 내가 아무렇지도 않다를 "암시랑아니여"라고 말해
배를 잡고 웃었다.

아버지 고향은 장성이다.
무슨 사연인지 할아버지는 장성을 떠나
백암산 너머에 있는 순창 복흥에 사셨다. 어머니 손을 잡고 순창에 가던 일이 생각난다.
와룡역(김제역 위에 있는 간이역)에서 네 정거장 아래인 정읍역에 내려 버스로 갈아탈 때 느꼈다.
사람들 말씨가 김제와 다르다는 것을.
순창은 정읍과 더 달랐다.
서울로 올라와선 가끔 장성에서 친지들이
올라오면 말씨가 더 진하다 걸 느낄 수 있었다.
성인이 된 뒤 전라도 말씨를 들으면 금세 남도사람인지 북도 사람인지 판별을 했다.
북도는 위로 올라갈수록 말이 느리고 남도는 아래로 내려갈 수록 찰지다.

하지만 경상도는 다르다.
대구말과 부산말을 얼추 구분할 뿐이다.
지역을 분간하기 힘들다.
충청도와 강원도도 마찬가지다.
이북말은 평안도와 함경도를 겨우 구분할 뿐 황해도 말은 짐작조차 못한다.
제주도 말은 남북이 아닌 동과 서로 갈린다고 한다.
토양과 기후의 차이로 심는 작물이 다르니 말도 달라진다.


몇해 전 순천에 갔다 어린학생들이 하나같이 서울말을 쓰는 걸 보고 놀랐다.
부산이라면 굳이 애써 서울말을 배우려 애쓰지 않을텐데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이라
자신의 억양을 버리나 싶어 슬펐다.


풀빵 날적이(日記)

2020.3
1

참새가 방아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난 풀빵집을 지나치지 못한다.
1000원에 세 개.
맛은 어릴 때 먹던 풀빵을 따라갈 수 없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나?
어느 날 큰형이 면소재지 풀빵집에서 풀빵을 사주었는데 너무너무 맛있어 게눈감추듯 먹어치우곤 했었다.
이후 그 때만큼 맛있는 풀빵(붕어빵 포함)은 먹어보질 못했다.
지금먹는 풀빵에선 쓴맛이 난다.
맛의 차이인가?
아니면 입맛이 고급화 되어서인가?
알 수는 없지만 풀빵기기를 볼 때마다 까마득한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곤 한다.

꿈이라도 꿔보자 날적이(日記)

경기도에 있는 어느 절 요사채에서다.
차를 마시던 스님이 "여윳돈이 조금 있을 때 무슨 아파트를 사놓으면 좋다는"
말씀을 하실 때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세상 명리를 초월해야 하는 스님도 이런 말씀을 하시나 싶었다.
그 것도 민주화운동 인사들과 관계가 깊은 스님이다.
그 일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함께 자리했던 친구 q는 스님에게 발주받아 일을 하는 처지여서 태도가 조심스러웠다.
스님을 어려워했다.
그에 비해 난 거칠 것이 없었다.
이 것 저것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친구 q는 여윳돈이 조금 있었다.
스님에게 발주받은 돈을 알뜰살뜰 모아 경기도 양평에 전원주택을 지었다.
마당엔 잔디를 심고 담장은 나무로 둘렀다.
개도 키우고 닭은 열마리 쯤 키워 달걀을 사다먹는 일이 없다.
그림같은 집에서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같은 자식들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q.
내심 부러웠다.
세상에 태어나 저만한 삶을 사는 것도 복이다 싶었다.
여윳돈은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근근이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어느날 갑자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여윳돈이 좀 생길까?
어쨌든 꿈이라도 꿔보자.

국화꽃 에세이(手筆)

어린날 집앞마당엔 국화꽃이 수북했다.
특히 학교갈 때면 이슬을 머금어 더 아름다웠다.
입는것 먹는것 모두 변변찮았지만 마당한켠에 심은 국화꽃향만큼은 진하여 가난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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