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01일
만화 조선왕조실록

만화조선왕조실록 제 5권 '선조실록' '광해군일기' 
글 박영규 그림 성주삼  
 
형집에 갔더니 만화책이 한 권 있었다.

만화 조선왕조실록...조카녀석이 보던 거란다.

딱히 할일도 없고 심심해 만화를 집어 들었다.

처음엔 그저 그렇더니 갈수록 재미있었다.

붕당정치(당쟁)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이해하기 쉽게 그려져 있었고 임진왜란은 스펙타클했다

이 걸 그리기 위해 작가가 흘린 땀의 양은 얼마일까?

뒷부분에 해당하는 광해군편은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과 오버랩 돼 읽혔다.

역사는 진화한다지만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의 역사는 한 걸음도 진화하지 않은 것 같다

당시의 상황이 현재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숭명반청이란 헛된명분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린 인조반정세력과

병역기피와 원정출산을 일삼는 지금의 기득권 세력 즉 숭미사대주의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결국 그들은 하나였고 과거세력이 그랬듯 지금의 기득권세력도 그들만의 성을 겹겹이 쌓아가리라.

그런 점에서 실리외교를 추구했던 광해군의 실각이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by 모두루 | 2009/12/01 04:40 | 책, 영화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2009년 11월 29일
한강 1 (중랑천)
내가 속한 단체의 비상대토론회가 있던 26일(금).
오전 11시 조금 너머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와 오후 2시반 쯤 도봉산역에 도착,
중랑천 자전거 도로를 따라 한강을 경유 회의 장소인 합정동 사무실까지 달렸다.
자전거 도로에서 보낸 시간만 총 5시간.
사진도 찍고 요기도 하고 중간 중간 쉬어가며 달렸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걸렸다.
위 지도는 대동여지도의 부록격인 경조오부. 서울부분을 따로 새긴 지도다.
파란색 선은 어제 자전거를 타고 달린 코스.
도봉산. 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 처음 올랐고 그 뒤 수차례 더 올랐다.
수락산. 재작년 처음 올랐을 때 너무 무서워 다신 오지 않으리라 했었다.
그리고 1년 뒤 다시 올랐다.
무서워 벌벌 떨던 코스에 계단이 설치 돼 있었다.
나도 모르게 김이 빠지고 말았다.
도봉산역에서 장암역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자전거 도로가 끝나는 줄 알았는데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자전거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출발점을 삼으려던 계획을 수정, 장암역 근처에서 출발,
한강을 향해 폐달을 밟았다.
아파트에 몸을 가린 수락산이 애처롭다.
물은 모래톱을 키우고 샛강을 만들며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한남정맥에서 가지 뻗은 산줄기는 수락산을 만들고 불암산을 만든 뒤 용마산에서 끝을 맺는다.
불암산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처음 올랐고 재작년 다시 올랐다.
조선시대 봉화를 피우던 봉화산.
산 곳곳이 참호이고 북미원산의 리기다소나무가 많은 면적을 차지한다.
산 정상엔 봉수대를 복원해 놓았는데 글라인더로 민 흔적이 부자연스럽다 못해 참담하기까지하다.
중랑교. 고등학교 시절 어쩌다 이 다리를 건널 땐 꼭 코를 막아야했다.
그만큼 악취가 심했고 물도 시커맸었다.
새들이 살지 않은 건 당연지사.
지금 역시 냄새가 나긴하지만 옛날과 비할 바는 아니다.
국민소득이 높아지는 만큼 환경도 좋아진다고 한다.
용마산의 조망은 서울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든다.
눈 쌓인 겨울에 올라도 좋고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 올라도 좋다.
고구려 산성이 있는 아차산과 연결돼 있으며 서울 외사산 가운데 하나다.
백악에서 발원한 청계천의 물은 중랑천의 물과 몸을 섞은 뒤 한강으로 흐른다.
중랑천은 서울에서 가장 큰 한강 지류다. 그 다음은 안양천...
이명박이 서울시장 재직 시 복원한 청계천.
한강에서 펌프로 퍼 올린 물이 하루 24시간 흐르고 있다.
자연하천이 아닌 인공하천으로의 복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펌프로 물을 퍼 올려 흐르게 한 가카의 생각은 참으로 기기묘묘하다.
중랑천 하류에 있는 살곶이다리. 조선시대 가장 긴 돌다리였다.
경복궁을 중건할 때 돌이 모자라 이곳 다리 석재를 가져다 썼다고 한다.
응봉산.
산 꼭대기에 있는 학교, 동호공고를 지나 팔각정에 오르면 한강일대가 환히 보인다.
작년 만화의 날 행사와 재작년 우만연 사무국 갈 때 응봉산을 오른 뒤 남산을 거쳤다.
조정래 대하소설 한강에서 고향을 등지고 서울에 올라온 천두만이 처음 자리를 잡았던 곳이 저 응봉산 산동네다.

(아래로 이어집니다)
by 모두루 | 2009/11/29 00:08 | 여행 | 트랙백 | 덧글(2)
2009년 11월 29일
한강 2 (옥수동에서 합정동까지)
옥수동과 압구정동을 잇는 한강의 열다섯 번 째 다리. 동호대교
조선시대 옥수동엔 두모포란 포구가 있었고 압구정동엔 세조 때의 권신 한명회의 정자 압구정이 있었다.
겸재 정선이 65세 나이에 양천 현령으로 있을 때 한강을 여행하며 경교명승첩이란 화첩을 남겼는데
압구정 그림도 그 가운데 하나다.
조선시대 한강은 삼남지방에서 실어 나르는 세곡선과 경강상인의 배들로 가득했다.
잠수교. 홍수 때에는 수면 아래에 잠기도록 낮게 가설한 교량으로 물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떠내려 오는
물건이 걸리지 않도록 난간을 설치하지 않는다.
하천관리의 측면에서는 장애물이 되며, 바람직하지 않으나 가설공사비가 절감되기 때문에 시골의 작은
하천에는 비교적 많으며 서울 한강의 잠수교는 좋은 예로, 지금은 그 위에 다시 교량을 가설하여 2층
교량으로 되어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발췌)
밤섬은 내가 태어나던 해인 1968년 지도상에서 완전 사라졌다.
여의도 개발을 위해 섬을 폭파한 뒤 흙을 모두 퍼 나른 것.
중, 고등학교 시절 한강을 지날 때마다 밤섬이 어디인지 궁금해 찾아봤으나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왜냐면 사라진 섬이기 때문에...
하지만 자연복원능력에 의해 섬은 다시 태어났다.
오랜 세월 토사가 밀려들면서 자연스레 섬이 만들어진 것이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김씨표류기는 자살을 위해 한강으로 뛰어내린 주인공이 밤섬에 표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절두산 성지.
조선시대엔 봉우리가 누에 머리모양처럼 생겼다 해서 잠두봉으로 불렸다.
경교명승첩의 양화진.
저기 블록하게 솟아난 봉우리가 잠두봉. 지금의 절두산 성지다.
회의 중간에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철에 자전거를 실었다.
3단 접이식으로 몸체(바디), 핸들, 폐달이 접히지만 전철에 싣고 다니기엔 너무 무겁고 불편하다.
특히 러시아워 시간엔 거의 죽음... 

이로서 지금까지 여섯차례에 걸쳐 한강의 가장 큰 지류인 중랑천과 안양천을 돌았고 일부를 뺀 한강 전구간을 돌았다.
나머지 구간은 앞으로 시간나는대로 쉬엄쉬엄 돌 계획...
덕분에 이튿날에 그 이튿날까지 피로가 풀리지 않아 고생했다.
by 모두루 | 2009/11/29 00:07 | 여행 | 트랙백 | 덧글(6)
2009년 11월 23일
인터뷰
난생 처음 인터뷰다
월간 우리만화에 연재하는 "정가네소사"의 작가 정용연...
편집장 인호가 취재하고 형욱이 사진을 찍었다
이번 12월호가 아닌 11월호(?)에 인터뷰 기사와 사진이 4면에 걸쳐 나온다는데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
형욱이 찍은 작업실 모습. 
예닐 곱평 되는 이 공간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바깥풍경을 보고 밤하늘의 달과 별을 본다 
물론 작업실이기에 작업이란 것도 하는데 문제는 그 양이 아주 적다는 것...
부엌이라고 해야되나 거실이라 해야 되나?
식탁 대신 책꽂이를 설치, 그동안 모아온 책과 비디오 음반등등을 꽂았다.
책꽂이 위에 있는 사진의 주인공은 노무현 대통령. 
지난 5월 29일 서울 시청 앞 노제 때 주운 사진을 액자에 담았다.
노무현...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자리잡은 공간배치.  맞은편엔 붙박이형식의 장과 TV, DVD 플레이어가 있다.
형욱이 찍은 사진 가운데 가장 맘에 든다.  왜냐면 못생긴 부분을 가려주었기 때문...

인터뷰가 끝난 뒤 가까운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깐풍기를 먹었다.
음...맛있어...그리고 계산은 인호가...미안하다. 멀리까지 왔는데 대접도 못하고...
그나저나 적은 생산량도 문제지만 덕지덕지 붙어있는 살도 문제다.
by 모두루 | 2009/11/23 20:15 | 사진(photo) | 트랙백 | 덧글(4)
2009년 11월 21일
밀린 재산세 자동차세 주민세

밀린 재산세와 자동차세를 내기 위해 시청에 갔다가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오륙년 전 형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박 모 대리였다
박봉임에도 군소리 없이 언제나 성실히 일하던 사람...
야근 수당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항상 밤늦게까지 남아 일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혹 어떤 이는 이를 노동착취라 말하겠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선 유지할 수 없는 것이 중소기업의 사정이다 
    
그래 지금은 무슨일을 하느냐 물으니 자동차 번호판 일(?)을 하는데 여직원과 함께 시청에 나와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시청엔 공무원만 있는 줄 알았더니 그 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만나 반갑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할말이 있는 것은 또 아니었다 
자동판매기에서 음료수를 꺼내 마시며 십여분 가량 얘기를 나누다 헤어진 게 전부였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뜻밖의 장소에서 우연치 않게 오래전 알고 있던 이성을 만나고 그래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박대리와의 만남은 지극히 일상적이었다
또한 이성이 아니라 남성이었다
만약 이성이었다 하더라도 일상적인 만남으로 그쳤을 게 뻔하다
나의 삶은 영화나 소설처럼 뜻밖의 일로 가득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집이 있어 재산세를 내고 (38,800원) 차가 있어 자동차세를 내고 (42,600 원) 주소지를 두고 사는
주민이어서 주민세(13,500원)을 냈다    

by 모두루 | 2009/11/21 01:00 | 날적이(日記) | 트랙백 | 덧글(4)
2009년 11월 20일
사이사이 30
(클릭 하면 그림이 커집니다)
2009.11.19 한겨레신문 25면 

지리산 종주 마지막 날 천왕봉에서 만나 김병관 전 연하천 대피소장님!
3~40 분 정도 대화를 나누었는데 진실로 산을 사랑하는 분이었다.
지리산을 지키기 위해 공직에서도 물러나신 분...
대화를 나누며 영혼의 맑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림에서보다 훨씬 더 잘생기셨다.
by 모두루 | 2009/11/20 02:32 | 그림에세이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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